덩케르크- 를 봤다.
이미 첫 장면에서, 총알이 두두둑, 등 뒤에서 쏟아질 때, 몇 명이 쓰러질 때, 난 그들 중 한 명 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영화가 고문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살아야 한다, 라고 하는게 어떤 의미인가. 살아야 한다- 고 느낄 때 내가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지 자꾸 나는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살아야 한다면, 왜. 그 전쟁통에 내가 굳이 배에 올라야 한다면, 왜. 그냥 '살고싶다' 는 것 말고. 정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건지 사실 나는 그게 궁금하다. 그렇다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면 죽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튼 고통스러웠다. 덩케르크를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그 군인들처럼 극장을 빠져나가고 싶었는데 너무 집중해서 보는 바람에 나도 덩케르크에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나에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도서관엘 들러서 또 책을 한아름 들고 나왔다.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 유대인의 지혜' 라는 책이다.
저에게 홀로될 능력을 주소서
매일같이 습관처럼 바깥에 나가
나무와 풀 사이에서, 들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그곳에서 나는 홀로 기도에 임하리니
나를 아시는 바로 그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리니
그곳에서 내가 흉금을 털어놓게 하소서
들판의 모든 이파리들이
모든 풀과 나무, 식물들이
내 발걸음에 잠을 깨어
내 기도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기를
그리하여 내 기도와 말이
모든 자라나는 것의 영혼과 생명을 통해 완전해지길
생명은 모두 초월자인 그분이 주신 것이니
오 하느님은 내 흉금에 있는 말을
물 흐르듯이 꺼내놓게 하시고
내가 일어나 두 손 들어 그분을 경배하게 하시니
이는 나를 위함이고 내 아이들을 위함이로다
나흐만이라는 랍비가 쓴 시 라는데, 아침부터 이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친구가 소개팅을 하라며 한꺼번에 두 명의 남자를 소개시키려 했다. 다음달엔 이직도 있고, 정해진게 많지 않지만 해야할건 많이 있는터라 좀 차분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거절했는데 그 친구가 '40명의 남자를 만나야 한 명을 고를 수 있다' 는 말을 했다. 굳이 한 명이 필요하지 않다, 고 해놓고 서른셋 데이트 상대 없는 미혼여성의 삶이 마치 '실패한 삶' 인 듯, 같은 여자에게도 그렇게 보여진다는게 갑자기 화가 났다. 잘 살고 있는데.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 가사를 봐도 둘이어야 온전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온전하지 못한 삶인가. 마주보지도 못할 사랑이 붙어있는다고 완전해질까.
잘 살고 있습니다. 외롭지 않아요. 오히려 혼자일 때 더 꽉 차는 느낌이거든요. 둘이어도 외로운거 있잖아. 니들도. 괜히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혼자 못할게 없어요. 삼겹살 집 가서 삼겹살 혼자 먹는거, 그건 삼겹살 안좋아하니까 안해도 괜찮잖아. 암튼.
마흔명을 만나 한 명을 건지는거, 그건 사랑인가. 그게 사랑이라면 굳이 하고 싶지 않고.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818. (0) | 2017.08.18 |
---|---|
무능력자 (6) | 2017.08.13 |
2017년 상반기 결산 (0) | 2017.07.02 |
170616. (0) | 2017.06.16 |
170607_나의 욕구 (0) | 2017.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