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쓸데없는 얘기

comodisimo 2017. 10. 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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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네가 왔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도 한 번 보고싶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그걸 내 입으로 할 수 없었던 터였다. 혹시 너에게 연락이 오면 만나겠지만,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

 

사실 마음은 편해졌다. 예전같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었고, 예뻐보이고 싶었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별 수 없었다.

언뜻, 네가 '이 동네오면..' 이란 말을 했다.

그 말이 꼭 '널 보러 또 여기 올께' 로 들렸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기분 좋았다.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널 좋아한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다만 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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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은 사람의 연애는 좀 유연해야 한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말에도 당황하지 말아야 하며, 갑자기 끊어지는 연락에도 초연해야 한다. 나는 절대 당황하지 않았다는 듯. 그리고 너의 그런 선택을 존중한다는 듯.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겠는가. 아무리 짧은 순간을 공유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순간에 익숙해진다고 이별이 이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음에 보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내 뒷 모습에 혹시 모를 미련을 보여주지 않도록,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가야 하며-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 백번이고, 아니 뒤돌아서 걸어가고 싶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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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의 마지막 연애에 대해 물었다.

마지막 연애의 시작은 20년 가까이 묵혔던 나의 고백이었지만, 끝은 여름의 끝에 아주 짧은 키스와 함께 사그라져 버렸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난 그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사진을 보면 단번에 기억할 수 있지만, 머리로 상상하려고 하면 얼굴은 마치 블러로 칠한 것 처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의 손, 푸-른 청바지를 입었던 뒷 모습. 잘 어울리지 않지만 자주 입던 초록색 티셔츠들. (왜 너는 초록색을 좋아했을까.) 늘 조금은 길게 다듬던 헤어스타일, 생김과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까지 모두 기억이 나는데,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연애를 왜 그동안 안했느냐 물었다.

안하려고 했는지, 안하고 싶었는지, 잘 안됐던건지, 그런건 잘 모르겠다.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기분이어서- 그렇다고 할 수 밖에. 그래도 철벽 친 것 치고는 꽤 짧은 기간이라고 위로해줬다. 4년이 짧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걸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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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하고 싶다.

투덜거려도 괜찮을 사랑. 조금은 징징대도 괜찮을 사랑. 허구헌날 네가 있어줘서 기쁘다고 고백해도 괜찮을 사랑. 너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을 사랑. 나의 모든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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