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조금씩

180617.

comodisimo 2018. 6. 17. 21:15

#1.

오늘은 사실 주일이었는데. 

그래서 기도라도 꼭 하려고 그랬는데.

확실히 내가 뭐가 막히긴 막혔나봐요.

기도도 잘 안나오고, 자꾸 다른짓만 하게돼요.


어느날인가, 밥 먹는데 오빠가 불쑥 물었어요.

"만약, 하나님이 단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 하면, 넌 뭐를 빌꺼야?"

듣자마자 저는

"그럼, 난 지금 이대로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빌꺼야."

라고 했고, 옆에 듣던 새언니와 엄마가 깜짝놀랐어요.

한편으론 대단한 믿음이라고, 또 한편으로는, 가지 말라고..


언니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건 어려울거 같다 그랬고,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먼저가는게 마음에 밟혀서 안된대요.


그러겠죠? 우리는. 아마.


그래서, 다른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보다 나은 나의 선택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조금 뒤에 엄마는,

그만큼 네가 요즘 힘든거구나, 라고 하셨어요.


사실 당장 천국에 가고 싶을만큼, 사는게 힘이 드는건 아니예요.

다만- 앞으로 살아야 할 삶에 

나는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제 앞날이, 오늘과 다를까요?

무엇에 저는 더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당장 저를 데려가실 것 같진 않으니-

사는 만큼은 열심히 살아봐야죠.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혹시, 내일이 오늘의 삶보다 더 못한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좀 참아질까요.



#2.

회사에서 큰 행사가 있었어요. 

어쩌다보니 저에게 큰 임무가 주어졌고,

평소같았으면 거절했을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때는 '그러지 뭐' 라고 냉큼 대답했었을까요.


암튼, 저는 한 세미나의 사회자가 되어 무대위에 오르게 되었지요.

손님은 150여명 정도.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 놓여져 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 저는, 무대를 돕는 사람이었거든요.


연습때까지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핀조명이 저에게 떨어지자 마자 손도, 다리도, 막 떨리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태연한 척,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저에게 잘했다, 좋았다, 고 하는 사람이 없네요.

오히려 초반엔 좀 실수하시던데요. 라던지, 이제 끝났으니 됐죠. 라더라구요.

참 나.

그래도 내 생각엔, 열심히 잘 했다. 고 생각했는데, 아쉽더라구요.


근데, 내가 왜 남의 칭찬에 이렇게 목을 맬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차피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는 생각을 했어요.

칭찬하지 않은건, 별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

스스로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어요.


뭐 어쩌겠어요.

이미 끝난것을.


그래도 스스로에게 기특해요.

아무튼 그게 제 한계였다면- 그것까지는 도달한 것 같아서요.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서 투정하고, 불평하는 것 보단

그래도 떨어지더라도 일어서 봤다는건 저에게 중요한 일인거 같아요.


그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저란 사람의 한계도. 

또, 그런 한계에 내가 비록 부끄러움을 당한다 한들,

내 한계를 정면으로 목도했다는 것도.



#3.

가족들이 여행을 떠나는데, 혼자 있겠다며- 굳이 주말을 혼자 보냈어요.

무엇을 해도 좋을, 좋은 날씨였는데-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시간을 보냈어요.

예약해두었던 운동도 감기를 핑계로 취소하고,

늘어지게 티비를 보다, 잠을 자고-

잠을 자다 일어나서 티비를 보고.

빨래도 해서 널어두고,

낮엔 일부러 마트에 나가 맥주와 과자도 사오고,

병원에 계신 할머니한테도 순대 사서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오고,

또 산책도 했지요.


좋았어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경쓰지 않는 주말이 있다는게 좋더라구요.


또 일주일이 어떻게든 지나가겠죠.



#1-1.

사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차를 계산하곤 했지만,

이제 진짜 괜찮아요.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숱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요. 이유를 설명할 이유조차, 이젠 없어요.


내 얘길 듣던 오빠는, 

내가 혼자인 이유로, 아직 불분명한 미래가 아득해서-

나약한 생각을 한거다, 라고 얘기했지만,

그건 아닌거 같아요.


난 좀 침잠했을 뿐이예요.

혹시 내가 약하다면, 그럴수는 있겠죠.

또 그런 사람이 나일테니까.



'매일조금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0624.  (0) 2018.06.24
180610  (0) 2018.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