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교수의 책을 읽고 있다.
그릇이 그릇으로서 쓰임이 생기는 것은 흙의 성질이 없어지고 그릇의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자기의 용도를 버리고 쓰임새와 하나가 되면 '쓰임' 이 가능한 물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이 글은 도덕경이란 도가 사상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기독교 적으로 보자면, 내가 나의 고집과 의지로 살려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그 곳을 채우시고 살게 하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죄인된 성질이 없어지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 로 산다는건 어떤 의미일까.
어렸을 때의 나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만큼 예민한, 그야말로 '섬' 과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 이므로,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 그러므로 굳이 그릇이 되려 하지 않는.
지금의 나도 늘 꾸준히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섬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조금은, 그릇이 되고 싶다.
굳이 누군가를 담아내겠다는 욕심보다,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할 무엇이 되더라도- 그것이 나를 지으신 이의 뜻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될 수 있는.
흙이 빚어져 찰흙이 되고, 또 그것이 굳어져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우린 그 공간에 다른 무수한 것들을 담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흙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나로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가진 좋은 재료들을, 그것들을 잘 다룰 수 있는 분께 맡겨드려 빚으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 그래서 어떤 모양이든 그릇이 되는 것. 그것이 정말 '나' 로서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만 고집하면 나는 그저 '나' 가 되겠지만, 내가 '나' 를 비우면 '우리' 가 될 수 있다.
홀로 있는 '나' 보다,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 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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