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70924 사랑타령

comodisimo 2017. 9. 24. 00:43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출장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뭐 어찌어찌,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 중. 자체 평가를 내리자면, 업무용 단어를 좀 공부해야 될 것 같다는 것. 노력하지 않으면 되는게 아무것도 없다. 정말.


중국은 인터넷이 정말 느린데, 예를들면 사진 한 장을 전송하려고 하면 3분 이상 걸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보내다가 취소되기도 하고 중단시킬수도 있고, 취소할 수도 있다. 

답답하긴 해도 한 번 손가락 끝을 떠난 메시지가 취소될 시간이 있다는 것 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아마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말을 꽤나 아끼고 살게 될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쓸데없는 말들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전송되지 못한 사진을 취소하며 지워내듯, 먼저 앞서나간 내 마음을 지워내는 일도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오늘도 또. 조금 앞서서 너를 기다리다 못해 '여기야!' 라며 손짓까지 하고 있으니. 그런 내 행동들을 지워낼 수 있다면, 독한 맘을 먹고 반드시 지워버리고 싶다. 

그러나- 솔직히 그건 '나' 이다. 보이고 싶은 사람에겐 마음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사람. 아마 난 그렇게 지워준다 하더라도 또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다.


스물 세살, 생면부지의 남이 예쁘고 귀엽다며 쪽지를 보내왔다. 열 살이나 어린 아이 (미안, 너는 그냥 아이나 다름이 없구나) 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게 낯간지러웠다. 아무튼 집요하게 나의 이상형을 묻기에- 몇번을 거절하다 겨우 생각한 대답은 '손이 많이 안가는 사람' 이라고 해버렸다. 

손이 많이 안가는 사람 이라니. 내가 한 말이지만 꽤나 괜찮은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 할 일 알아서 잘 하고, 잘 씻고, 정신 건강하고 신체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한 편, 사랑은 '구속' 이라고 생각해버리는 내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끝은 이러하다. 

그 아이는 차단됐고, 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구속하고 싶지만, 구속할 것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 앞 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냥 사랑이라는 것. 앞 뒤가 맞지 않지만 이해되는게 사랑이고, 그래서 어려운게 사랑이고.


립스틱과 립글로즈는 사용상 기능이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물건이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립스틱' 을 꺼내고 싶은 순간과 '립글로즈' 를 꺼내는 순간은 다른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예뻐보이고 싶을 때 나는 '립스틱' 을 꺼낸다. 그럴 때 립글로즈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가의 립스틱을 카피해서 파는 저렴한 립스틱들도 많이 나오지만, 굳이 비싼 립스틱을 골라, 파우치에 넣어두고, 꺼내보이는 그 순간의 설레임을 알기나 하려나. 하긴 뭘 알겠냐. 


사랑에 있어 싸우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그 사랑의 우위를 차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걸 잘 알고 있으니, 그리하여 관계에 대해 확신하고 있으니 화도 낼 수 있는거라고. 

생각해보니, 나는 모든 순간 화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슬퍼졌다. 

그저- 함께 모든 계절을 보내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웃고, 좋은 음식을 나눠먹고, 이야기 하지 않는 빈 공간마저 어색하게 만들지 않을, 숨 쉬는 공기가 같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 뿐이었는데, 그런 평범한 순간을 편안하게 나누기 위해 내가 우위를 차지해야 하다니. 너무하다. 


매번 내 마음은 다 흘러넘치는데, 박원의 노래처럼 날 담아두는 너의 마음이 그렇게 작을 줄 몰라서 다 쏟아져버린다.


아 가을이 잔인하다. 사랑타령을 또 하고 앉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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