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30

Thanksgiving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일관적으로 참 어렵고 힘든 한 해 였다. 당연하다 생각하던것들은 당연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하던 폭탄들은 내 삶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나의 자존감이라고 생각하던것들은 때로 나의 자존심을 무너뜨렸고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또 다시 깨지며, 스스로 좋은 사람이 아님을 여러번 증명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것을 고르자면 그런 상황에서 남편과 함께 이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며 더욱 돈독해졌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에 더욱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둘이 함께 하는 예배시간도. 나의 삶은 기적적으로 순탄하지 않다. 아마 모두 느끼기에 그들 스스로의 삶이 그러하듯이. 한 발 내딛은 그 곳이 이제 편안해 질 즈음이면- 나는 다른 발을 그 곳에 함께 내려놓..

일기 2020.11.11

난임일기 #4 (1차 종료)

아침에 확인한 임테기에선 분명 흐릿하지만 두 줄이 보였었다. 전날보다 또렷해진 선에 '앗! 이것은 좋은 신호다!' 싶었다. 남편한테 말은 안 했지만, 병원 가는 길도 괜히 신났고, 자신감 있었다. 지원금은 어디까지 쓰면 되는지도 물어보고, 통과하면 약 처방받으러 또 와야 한다길래, '아 그럼 반차 내고 남편 몰래 와서 처방받고 서프라이즈 해줘야지!'까지 생각했는데. 수치가 0.1이랜다. 며칠 전 조카가 '0은 아무것도 없는거야!' 라고 그랬는데, 그래. 아무것도 없는 거야.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1차 시험관이 끝났다. 냉동도 하나 남기지 못한 내 난자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2차는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정말 뭐 하나 내 맘대로 되는게 없다. 내가 잘하거나 못하거나. 아니, 뭘 어떻게 해야 ..

일기 2020.06.02

난임일기 #3

한 달 내내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실기평가도 보고, 숙제도 내고, 내일 드디어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토요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확실한 마음으로 (?) 임테기에 임했다가 2줄을 발견하고, 반나절도 못가 남편에게 쪼르르 얘기했다가, '병원에서 확인하고..'라는 뜨뜨미지근한 얘기만 들었다. 아닌 후의 나의 실망감을 덜어주려는 배려였겠지만, 한편으론 섭섭했다. 일요일,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해 봤는데, 토요일보다 옅어졌다. 음. 그래도 2줄이 보이긴 하니까. 하고 위안. 월요일, 어제와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싶어 또 해봤다가 정말 실망감만 커졌다. 이젠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꾸 생리통 있을 것 처럼 배도 아프고 가슴도 불편하다. 정말 난포 주사의 영향이었을까. 새벽 일찍 일어나 확인해보고 ..

일기 2020.06.01

난임일기 #2

1차 시험관 시술이 모두 끝났다. 과배란 유도하기 위해 주사를 맞고, 좋은 질의 난자를 만들기 위해 약을 잘 챙겨 먹었다. 난소가 하나뿐이고, AMH 수치도 좋지 않아 한두 개 나올까, 싶었는데, 여섯 개나 채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중급 배아 2개뿐. 나머지 4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2일 배양이라는, 네이버에 많이 검색도 되지 않는 과정으로 배아를 이식했다. 그리고 5일째. 그냥 마음 편히 먹고, 너무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게 뭘 어떻게 해야 내려놓아지는지 몰랐는데, 가족들이 모두 '네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야'의 마음으로 날 대해줘서 그런가,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정말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내려져 있었다. 정말 이건 이제 내 영역의 일이 아닌 문제다...

일기 2020.05.26

난임일기 #1

난임이다. 그런게 있는줄은 알았지만, 내가 그럴줄은 몰랐다. 결과를 들으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내가 그렇다고?' 를 반복해서 생각했다. 문제는 어디였을까.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들추다보니 결국 '나' 만 남고, 그래서 내가 나를 탓해야 하고, 그러다 결국 내가 그에게 미안해진다. 그래도 '니 탓이 아니잖아' 라며 힘주어 말해주는 남편의 말에 위로를 얻었다. 한참을 세상이 뒤집힌 것 처럼, 거울 속 내 얼굴과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오다가- '괜찮아!' 하고 또 쓸데없이 용기를 냈었는데. ...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이 기대마저 산산히 부서져버린 아침. 다시 오늘 또 무너진다. 내 세상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간 기분인데, 이렇게 답답하고, 슬프고, 무겁고, 참담한 기분인데, 세상은 역시나, 아무..

일기 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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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여긴 문제가 생겨야 오는 곳이다. 2.며칠 뒤에 생길 일들에 대해 나는 초조하고 두려워진다. 그러나- 더이상 시간을 끌 일이 아니라는것도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나를 불안하게 할 바에야 끝내버리는게 낫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3.열심히 수고하고도 보람이 없다. 나의 보람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를 묻자면, 나에게 찾아야 함이 맞지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돈' 에서 나온다면, 내가 한 일의 보람도 그에게- 물어야 하는게 맞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줄곧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수고하고도 수고를 인정받는다고 느끼질 못한다. 4.역시 그게 문제다. 수고하고도 받는 것이 없는 것. 마음을 쓰고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 주고나서- 주었으니 되었다. 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

일기 2018.08.20

그런모양.

꽤 오랫동안 바빴었다. 블로그를 생각 안했던건 아니지만, 여기에 털어놓을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이제야 조금 한가해지니- 여기가 그리워져서, 굳이- 주말에 노트북을 열었다. 퍽 이상한 연애를 하고 있다. 여름 블라우스와 린넨셔츠들을 꺼내놓고 다림질하면서-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봐도, 답이 없다. 그저 모든 연애의 정답은, 내가 못견디겠으면- 떠나는 것. 나는 아직 떠날만큼 독하지도 못하고, 모든걸 견디고 남아있을만큼 쿨하지도 못하다. 지금은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있을 뿐. 다만, 내가 스물넷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이 연애를 지속했었을까, 하는건 의문이다. 마음에 뒤엉킨 말들을 정리하고 내뱉는게 이렇게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늘 내 나이가, 내 노후가 나..

일기 201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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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의 질문에 대답을 안할때는, '나는 너의 생각과 같지 않아.' 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네가 틀렸다고 할 수 없으므로. 네 마음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네가 잘못한건 아니므로.다만 그렇게 거절당한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네가 보고싶지만, 보고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말을 하고 싶지만 숨기는 것. 너와 같은 방식으로 대답하고 행동하는 것. 이런 시간이 길어지며 느끼는건내가 굳이 누군가를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이런 상황의 너는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 이런 시간과 관계가 싫은 사람이 먼저 떠나자, 하고 마음 먹어야 한다. 그러나, 다정한 말을 해주지 않는 네 마음이 정말 그런건지 두렵고, 확신할 수 없어 점점 손을 놓게된다. *나를 나보다 ..

일기 2018.04.05

180221.

같은 문제 때문에 여러번 말이 있었지만, 어제는 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또 말을 걸었다. 내가 그러지 않으면 그 친구가 먼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나는 그 친구의 그런 면을 몹시 충분하게, 다음에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거뜬히 이해하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무시하여, 화는 나고 이해는 안되지만, 철저하게 무시하여 같은 모습으로 응수해주거나, 그것도 싫으면 그만 만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더이상은 그 문제를 언급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무언가를 생각했다는 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말하지 않고, 빨리 나를 만나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했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늘 그런식으로-..

일기 2018.02.21

180122.자연스러움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의욕이 없다.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아도 굳이 그것 때문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걱정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의 알 수 없는 마음이나 생각 때문에 내 마음이 요동치고 싶지 않다. 설령 그것이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사람마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자고 일어나는 것. 밥을 먹는 속도. 말을 하는 습관. 치약을 짜는 습관 같은 흐름.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하게 되는 것. 이런것들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교정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세차례나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것. 굳이 내가 요구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굳이 그것을 수정 할 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일기 201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