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갑자기

comodisimo 2014. 8. 22.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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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음성을 녹음해둔 파일이 몇개가 있다. 오랜만에 듣다가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조언 - 유언 이라 해야할까 - 을 하시는 대목이 나오는데 누구는 뭐 이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내용. 내 차례가 되자 할아버지는 '우리 손녀는 걱정 하나도 없어' 라고 하시고 웃으셨다. 병원에서도 몇번이고 '우리 손녀는 걱정 하나도 안된다' 시며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 날 자랑하셨더랬다.
난 내가 이렇게 걱정스럽고 사는게 때로는 무섭고 겁이나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모를때가 허다한데, 왜 할아버지는 내 걱정을 하나도 안해주셨을까. 정말 날 믿어주셨던걸까 모르겠네.

이 얘기를 저녁식사시간에 엄마한테 했더니 엄마 역시 나도 네가 조금도 걱정되지 않는다시며 뭘 당연한걸 고민하느냐 하시는데, 아- 이런 절대적인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 모르겠는건 역시 나 하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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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군가가 나에게 운이 있는 편이냐고 물었다. (아니요, 요행을 바라고 살 형편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내가 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내가 만났던 남자들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꽤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다 놓쳐버린 내가 무슨 운이 좋은건가 싶기도 하지만, 잠시나마 좋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었고 좋은 추억들을 남겼고 아프게 이별도 해봤으니 나름 꽤 운이 좋은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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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이 아빠가 금식하고 계신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난 아직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만큼 성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참 이건 가슴 아프고 화가 나는 일이다. 함께 울어줄 수 없다면 손수건이라도 내밀어야 하는게 아닌가. 뭘 기다리고 있는걸까. 어떻게든 되기를? 사람이 죽어나가기를? 아님 임기가 끝나기를? 아이들의 죽음이 왜 정치적인 이슈가 되어야하는지 소식을 전할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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