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들이 가끔 - 것도 꽤 친한 친구들이 - 내가 너무 안정적이게 보여서 부럽다고들 한다. 감정 기복도 심해보이지 않고 늘 한결같아 보여 무슨 문제가 생겨도 거뜬히 '음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헤쳐나갈 것 처럼 보인다는 것. 사실 난 그렇지 않다. 물론 덤덤하게 보이려고 애쓰기는 해도 난 스스로 꽤 기복이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겉으로 보이기엔 그래보이지 않는가보다. 그래서 가끔 내가 '힘들다' 거나 '불안하다' 라는 단어를 쓰면 친구들이 꽤나 놀라고 걱정한다.
요샌 정말 조금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회사 일 하는 것도 벽에 막힌 것 처럼 힘들게 느껴지고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인지 몇번이고 생각하고 곱씹게 된다. 그러다가 다 그렇게 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조금 기운을 내기는 해도 여전히 조금씩은 흔들거린다. 숨을 크게 쉬고 혼잣말로 '도망가고 싶어' 라고 얘기하다가도 막상 도망가지도 못하는 내가 안정적인 것 처럼 보이는걸까.
지난주 금요일은 정말 어디든 가버렸음 좋겠다, 라고 생각하고 기차표를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아 맞다. 휴가철이지' 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주말 내내 곱씹게 됐다. 내가 떠났어야 했는데- 하고.
2.
요새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결혼'과 '연애'.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던 기.승.전.남자- 가 되어버리는 슬픈현실. 욱하는 마음에 가끔은 이러느니 혼자 살겠어! 라고 당차게 얘기해놓고 채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한숨을 크게 쉰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도통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나에게 가끔 주변 사람들이 왜 넌 연애를 안하느냐고 묻는다. 이젠 내가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안하느냐 물어봐줘서 고마워) 언젠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요리하는건 재주도 없고 흥미도 없는 내가 - 꼭 골초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담배를 끊는 것 처럼 - 요리학원을 등록해 내 사랑을 보여주겠다고 얘기했다. 과연 언제쯤 난 요리학원엘 등록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나도 걱정되어서 믿을만한 친한 남자 친구에게 '나 이상하냐?' 라고 물었는데 친구가 한참을 뜸 들이더니 '예전엔 니가 좀 이상하다고도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 보니 그게 니 매력이더라' 라고 대답해줬다. 이거 칭찬인지 욕인지 애매한데?
사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도 어렸을 때 처럼 무작정 마음을 줄 수 없는게 가장 큰 고민이다. 사람 하나만 보는게 아니라 이젠 그 사람의 환경까지도 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으려 무작정 내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고 치열한 탐색전을 수 없이 펼쳐봐도 조심, 또 조심하게 되는게 지금 내 나이가 아닐까. 사실 내가 연애 감정에 무딘 것 보다는 신중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3.
장 자끄 상뻬의 '속 깊은 이성친구' 라는 책을 샀다.
어렸을 때 읽었던 '까뜨린 이야기' 라는 책의 그림을 그리신 분이 이 분인걸 최근에 알았고 트위터에서 이 책의 내용을 자꾸 장자끄상뻬봇이 올리는 바람에 구입하게 됐다. 작은 책들은 이미 절판이고 그나마 최근에 나온 양장본을 샀는데 한번에 읽자면 한시간만에도 다 읽어버릴만큼 소소한 이야기들이지만, 또 천천히 읽자면 평생을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다. 잘 보관해뒀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생기면 같이 공유하고 싶다.
거봐, 나 기승전남자-
4.
내 기준에 '기다린다' 라는건 내가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내 믿음이기도 하고 배려이기도 하다. 지금의 이 소소한 기다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니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넌 이 글을 읽진 않겠지만.
그런데 가끔 내 이런 '기다림' 이 '무관심' 으로 비쳐질 땐 난 도대체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넌 어떤 생각으로 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난 또 상처받지 않으려고 벽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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