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30416_ 그런정도의 낯선_

comodisimo 2013. 4. 16. 22:37

1.

사두고 수선을 맡기느라 일주일도 넘게 걸려 찾은

나의 세번째 트렌치코트-

급하게 막막 사느랴 사이즈도 하나 큰걸로 주문했..

조- 금 어벙한 핏이 나오는 것 같아서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보이프렌드핏이 유행이니까.

 

근데 난 너무 보이프렌드 같이 생긴게 함정.

머리도 요샌 너무 보이프렌드 스타일.

 

 

2.

체육학과 나오신 우리 대리님은 자꾸 나더러

요가나 발레, 스트레칭을 하라고 하신다.

내가 하고 싶은건 복싱이나 수영 이런건데.

 

난 운동선수가 굉장히 중요한 경기를 마치고

만족한다는 듯한 그 세리머니를 해보고 싶다.

연아가 마지막 스핀을 다 돌고

두 주먹을 불끈, 힘차게 내리치는 것 처럼-

뭐 그런 만족감을 나타내는 세리머니를 해보고 싶은데

요가나 발레, 스트레칭은 그런 세리머니가 안되잖아.

 

그런데 다 '몸매'를 위해서- 하는 운동이라면

더 여름이 '닥치기' 전에 회사 근처에 있는 센터를 알아보겠..

 

 

3.

특별했던 기억은 아련하니 남기기 마련인데

그런것도 모두 다 잊고

그것 위에 다른 무언가를 얹어버렸다면-

그 기억이 더이상 특별하지 않은,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 뭐 그런 일이 되어버린건가.

 

 

4.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우리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그렇게 안부만 물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가끔 누군가에게 살가워지고 싶을 때

그런정도의 낯선 - 내 삶을 방해하지 않을 -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조금 다행이지 싶었다.

 

막상 인연이 길어지고 서로를 알게되면

또다시 우린 식상해지고 싫어질테니.

 

 

5.

소개팅이 들어와서 사진을 봤는데

겉모습에 매력을 느낄만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물론 얼굴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얼굴에서 보여지는 그 사람의 성격이라는게 있잖아.

착한 사람 같아보이긴 했어도

조금 답답하거나 고집스러워보였다.

 

집에와서 엄마한테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더니

이제 니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아마 그런 사람들일꺼다, 라고 하셨다.

이미 조금 삶에 무엇이 잡혀가는. 혹은 잡힌.

그래서 고집스러운 기질이 있는.

 

나도 이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 상했고

그럼 늘- 소년같은 우리 아빠는 뭔가, 했고

그래도 난 좀 철이 덜 든 사람이 좋은 것 같다, 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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