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41015. right or wrong I can't get along

comodisimo 2014. 10. 15. 22:22

오늘 기분 굉장히 괜찮았었는데, 첫 음절이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플레이리스트를 뭘로 채워야하나 고민했었는데 재즈였나봐 역시.



아르헨티나 할머니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7-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요시모토 바나나의 최신작이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의 한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일본소설은 그런 분위기가 한창 유행일즈음 몇 권 읽었었고 좋아했다가 유행이 시들해지자 나도 시들해져서 잘 안 읽게 되었었는데, 그때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었더랬다. 얇은 두께가 맘에들어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 딱히 어떠할 것 없이 나쁘지 않았다. 읽었던 중에 

"정말 아름다운 여자는, 보고 또 봐도 어떤 얼굴인지 기억할 수 없는 법이지."
"유리씨 말하는거야?"
"그래."
"야 참.....멋진일이네."
나는 놀리는 마음으로 말했는데, 아빠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매일 보는데도 도통 종잡을 수가 없고, 어떤 얼굴인지 잘 모르겠다. 얼굴 주위에 뭐랄까....."
아빠는 얼굴께에서 두 손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른아른한, 예쁜 천 같은 것이 살랑살랑거리고, 그 너머는 확실하게 보이지가 않아."
"음..."
"그게 뭘까? 여자의 수수께끼다."
아빠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엄마도 그랬어?"
"글쎄, 처음에는 그랬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짜증스럽도록 또렷하게 보이는 거야. 그게 부부란 거겠지."
"그런데 유리씨는 그렇지 않다는 거야?"
"지금은 얼굴이 안 보이는 단계야. 아직은 좋은 때지."

이 부분을 읽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어디에서 누군가 해줬던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정말 그런 느낌 있지 않습니까. 좋았던 기억으로만 사람을 기억하는건지, 아님 정말 눈에 뭐가 씌여서 얼굴이 안보이는 그런거였는지. 그러니까 사랑들을 하겠지만. 


집에 오는 길에 할머니 신발을 한켤레 - 시장에서 싼 걸 - 사다 드렸더니 근래 가장 환한 얼굴로 좋아하시며 거실에서 신고 한참을 서 계셨다. 흡사 버건디색의 로퍼였는데, 뭐 이렇게 예쁜걸 사다주느냐시며 한참을 보시다가 조용히 '이게 내 마지막 신발이겠지' 라고 하셨다. 더 좋은걸로 사다드릴걸 그랬나, 라고 했더니 이정도면 훌륭하다시며 '나중에' 라고 하시는데 어쩐지 나중은 없을지도 모른다, 는 마음이 들었다. 같이 살 부비고 살아온 가족한테는 더 상처받는법이라 할머니한테 서운했던 적이 없었던건 아니었는데, 왠지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할아버지가 나 스물여섯이 되던 해 봄에 돌아가셨다. 그 때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5년만 더 살다가 와' 라고 하셨는데, 내년이되면 이제 그 5년이 되는 해이다. 할머니는 그 5년만 채우면 된다, 라고 생각을 하시는건지 점점 마음을 비우시는게 느껴진다. 내년 초엔 오빠가 장가도 가고 몇년만 더 계시면 정말 좋을텐데. 아직 건강하시지만,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나중은 없다- 는게 오늘에야 이렇게 마음이 와닿는다.


누군가 골라준 좋은 음악들을 아무 생각없이 듣고싶다. 이게 꽤 지치는 일이다. 좋은 음악을 찾는 일. 플레이어에서 자꾸 '다음' 버튼을 누르지 않게될, 그냥 그런 음악을 듣고싶은 것 뿐인데, 난 아직 내 취향도 제대로 모르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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