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30

151229. 쓸데없는 얘기들

집에 오는 길. 기도를 하려고 생각을 열었는데 정작 하고 싶은 기도가 나오질 않고 쓸데없는. 그러니까 그냥 피상적으로 하는. 내 본심과 다른 기도만 두서없이 줄줄 나왔다. 안하니만 못하다 싶어 그냥 입을 닫았다. 해야 할 얘기가 많은데 뭔가에 가로막혀 정작 해야 할 얘기를 못했다. 꿈에서라도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땐 진짜를 얘기하고 싶다. 나는 요새 이렇다고. 저녁에 씻으면서 그날 입은 속옷이나 양말, 셔츠 같은거 손빨래를 간단히 하는데 지난번에 빨아 널다가 '이건 빨았으니까 한번만 더 입고 버려야지' 했던 속옷을 빨고 있다는걸 알았다. 입으면 몸에 참 편하고 익숙해서 좋은데 낡아서 버려야 하는게 괜히 짠하게 느껴졌다. 아니.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되지만 버리고 싶어하는거. 오래된 사랑도 ..

일기 2015.12.29

151227.

헤어진게 아니라 잠시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사람도 있고 헤어진게 아닌데도 영영 못 볼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둘 다 그리 좋은 이별은 아니다. ​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은미 콘서트엘 다녀왔다. 대단한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번째다. 노래도 훌륭했고 새록새록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첫번째 콘서트에선 슬픈인연을 듣고 코 끝이 찡했던 것 같다. 다른것보다 엄마랑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점점 무뎌지는게 아닐까? 라고 했는데, 이런 이벤트에 점점 무뎌지는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본질은 그게 아니니까. 여유가 있는 사람은 좀 다르다. 세상에 날이 서 있지 않은 느낌. 경제적인 여유건 마음의 여유건. 그런 여유 속에 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해져야 할까? 웃으며 살기 위..

일기 2015.12.27

151218. Beethoven symphony No.9

​ 합창교향곡. 드디어 들었다. 1악장이 시작되는데 나도 모르게 찡 했다. 불멸의 연인과 카핑베토벤에서의 장면장면들이 생각났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평소엔 1,2,4 악장이 멋있다- 고 생각하고 들었었는데 어제 3악장을 듣는순간 경이롭다고 느낄만큼 가슴이 콩닥거렸다. 늘 아이돌의 음악은 비주얼과 함께 들어야 한다고 음악방송 무대나 하다못해 뮤비라도 봐야 입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클래식도 역시나 마찬가지. 악기들의 활이 그룹져서 움직이는거나 튕기는거. 팀파니의 울림같은거. 그런걸 보니 음악이 더 생동감있게 들려진다. 4악장에서 드디어 합창이 시작할 땐 진짜 벅찬 느낌이 있더라. 머리끝까지 꽉 찬 기분이었어 확실히. 다음번 공연도 가고싶다. 합창. 그땐 ..

일기 2015.12.19

151217.

http://www.pikicast.com/share/167590 피키캐스트 보다가 '오 이거 괜찮은데?' 싶어 퇴근길에 사서 색은 너무 예쁜데 보풀이 심해 입지 않는 니트를 꺼내 슥슥 했더니 새옷처럼(까진 아니지만) 깨끗해졌다. 신이나서 엄마옷도 할머니옷도 다 꺼내서 한참을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귀엽고 성능도 좋고, 옷도 안뜯기고. 잘 보관해서 몇년이고 써야지. 다만 건전지로 돌아가는데 약간 모터 타는 냄새? 같은게 좀 나긴 했어. 오래하니까. 이어령 선생님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키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첫 챕터를 읽으면서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어령 선생님처럼 유려한 글솜씨로 나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진 않으시지만- 우리 아빠가 투박하게, 혹은 내가 귀찮다고 느끼는 우리아빠가 날 사랑하는 마..

일기 2015.12.18

151213.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남의 일엔 관심 없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이러다가 월요일이 올텐데.'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빌려온 클래식 책을 읽었고 추천하는 음반을 들었다. 슈베르트에 대한 편견(내가 왜 편견을 가졌을까?)이 있었는데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듣고 있자니 엄청 고상함이 풍겨온다. 아직 취향이 확실하지 않아 그런지 추천한 작곡가들이, 음악들이 다 마음에 들어. 클래식 소비 연령대가 30~40대 여성이라던데 저도 이제 아이돌에서 갈아타는 겁니까? 안녕 갓세븐ㅠㅠ 안녕 빅뱅ㅠㅠ (아마 난 못할거야..) 일요일 밤. 자기 전엔 늘 손톱 손질하는 습관이 있다. 귀찮은걸 미루다 미루다 어쩔 수 없을 상황까지 미루는 것 같아 아마. 이게 그러니까 제일 귀찮은건가. ​​​ 스탠리큐브..

일기 2015.12.13

151211.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같을까? 만약 다르다고 한다면 난 너무 취약한 사람인건가.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사람들한테 잔뜩 치이고 나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건가. 죽고싶다는게 아니고 진짜 살아야 하는 이유나 목적이 뭔지 궁금해진다. 누군가 '내가 없어지면 돼. 그럼 좋아질거야.' 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럼 그저 네가 없는 것 뿐인게 되는거야. 달라질건 없어' 라고 했다. 만약 내가 없어져도 마찬가지. 좋아질건 없다. 다만 내가 없는게 되는 것일 뿐. 힘을 좀 내야 겠다고 저녁엔 항정살을 구워먹었다. 배도 안고픈데 꾸역꾸역. 뭐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살아야지. 괜찮아.

일기 2015.12.12

151210.

다음주, 합창교향곡을 들으러 가기 위해 베토벤을 찾아보고 있던 중, 추천으로 불멸의 연인- 이란 영화를 봤다. 베토벤이 음악은 작곡가의 정신상태를 반영한다고 한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작곡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모르고서야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 그리고 밤 새 합창교향곡보다 '크루이처 소나타' 를 돌려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급함. 합창 교향곡을 듣다보면 1악장에 '우주' 같은 걸 느끼게 된다고들 한다. 그렇다는 해설을 많이 읽었더래서 저 장면이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지켜봤다. 뭐 역시 천재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냉소적인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다니. 아니 그것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냉소적이지만은 않을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일기 2015.12.10

151207.

그래도 어쨌든 또 일주일은 시작합니다. 너무 신세 한탄만 하는 것 같지만 그 와중에 또 스스로 추잡하고 잘못된 것들은 반성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그렇게 그렇게 그렇지만은 않아. 합창 교향곡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책을 읽다가 글렌 굴드- 라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바흐의 골든베르크 앨범에 빠졌다. 이미 클래식은 안쳐본지 십년이 뭐야 훨씬 넘었지만 악보를 구해서라도 쳐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이 복잡한 안정감 같은건 뭐죠? 그나저나 잠이 솔솔 오는데. 할리스 다이어리가 생겼다. 뭐 어쨌든 잘 안쓰겠지만. 그래도 이거 꽤 유용할 것 같음. 메모장도 따로있고. 떼어지기도 하고 갈아낄 수도 있으니. 몇 해째 스벅 다이어리만 썼었는데 이젠 스벅 다이어리 안모으려고. 굳이 가질 않아서. 글에 온도가 있다. 손으로..

일기 2015.12.07

151205. 뿌리 (불안)

아침에 일어나 또 거실에 길게 누워 티비를 틀고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읽어보기 시작했다. 조용하면 이상하냐고 불안하냐고 물으셨다. 넌 항상 무언가 듣고 있어야 하는 사람 같아 보인다고. 혼자있을 땐 그랬지. 소리나 빛이 없으면 불안해서 집에오면 모든 불을 다 켜고 알아듣지 못하는 티비를 켜고 노트북으로 영화보고 잘 땐 노래 틀고. 그게 불안한건가. 불안하다는건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것. 못했다는 것. 내것이 아니라는걸 확인하는 것. 내 것이 아닌 것 같을 땐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서로에게 화를 낼 수 있다는건 다른 의미로 (내 생각엔) 어떤 모양이 되던 서로에게 뿌리내린 결과이다. 떠나지 않을걸 확신하는 것. 아니면 영영 멀어지고 싶다거나. 마지막엔 화도 낼 수 없었어. 내가 그..

일기 2015.12.05

151204.

오늘 휴가내고 병원순례 했다. 얻은건 스트레스 금지와 근육이 필요하다는 조언. 그리고 약봉지들. 떠나고 싶어 고개를 돌려도 몸이 아직 남아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문득 다시 그 곳을 바라보면 떠날 수 없어하는 나의 본능적 불안함이 있다. 미련이 아니다. 내가 떠나면 나는 또 어디에 정착해야 하는건가. 아니 정착할 수 있을까. 그 생각에서 만약, '정착 안하면 어때.' 가 되는순간 그제야 두려움을 날려버리고 떠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두렵다. 할머니께서 나더러 좋은 시절 만나 산다고 늙고 병든 스스로를 슬퍼하셨다. 물론 좋은 시절일 수 있겠지.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으니까. 근데 할머니. 할머니때에는 양학선이 같은거. 그거. 한바퀴만 돌아도 금메달이었대요. 요샌 공중에서 세바퀴를..

일기 2015.12.05